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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사 의사 열사 차이, 12월19일 매헌 윤봉길의사 사형일 이봉창 서거일

by 하양동백 2024. 2. 14.

목차

    지사 의사 열사 차이, 12월19일 매헌 윤봉길의사 사형일 이봉창 서거일

    우리 역사 속에서는 많은 분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이들을 일컬어 '지사', '의사', '열사'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부릅니다. 그런데 이 용어들 간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지사 의사 열사 차이

    의사: 무력으로의 항거

    의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외세에 '무력'으로 항거하다 의롭게 항거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대체로 무기를 들고 싸웠으며,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우다가 사형을 당했습니다.

    열사: 비무장으로의 항거

    반면 열사는 '비무장'으로 외세나 압제에 항거하다 의롭게 돌아가신 분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무기 없이도 몸으로, 말로, 글로 외세에 맞섰고 그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안중근 의사도 사실은 열사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무력이 아닌 '의지'로 일본을 저항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일단 무력으로 항거하셨기 때문에 보훈처의 구분에 따르면 안중근 의사로 부릅니다. 논란은 많지만 유관순 열사 같은 분들을 지칭합니다.

    열사는 비단 독립운동가에만 쓰이는 것은 아닙니다. 독립운동가 중에 열사는 독립열사라 부르고, 민주주의 운동을 하다가 돌아가신 분들은 민주열사라고 부릅니다. 독립 이후에도 우리 민족은 독재의 압제에 항거해서 수많은 열사의 피를 뿌린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한열 열사, 박종철 열사

    민주주의 운동을 하면서 총탄으로 독재에 항거했다고 해서 의사로 부르진 않습니다. 공식적이진 않지만 비공식적으로는 김재규 의사라는 밈 정도는 있습니다.

    지사: 광복 이후의 인물들

    지사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다양한 의사표현과 더불어 외세에 항거했으며, 광복 이후까지 생존하셨던 분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무력이나 비무장, 어떤 방식으로든 외세에 맞섰지만, 광복 이후까지 생존해 다양한 방법으로 활약했습니다.

    잊지 말아야 할 분들

    물론 이 외에도 김좌진 장군, 홍범도 장군 같은 분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독립군이나 광복군의 군인 신분으로 일제에 항거했기 때문에 장군으로 불립니다. 이러한 분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들을 잊지 말고 기리며, 그 헌신을 기억해야 합니다.

    12월 19일: 윤봉길 의사의 사형일

    오늘은 윤봉길 의사의 사형일, 12월 19일입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이날 일본의 제국주의에 맞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의 탄생일은 6월 21일이며, 매년 이 날을 기리기 위해 다양한 행사와 기념식이 열립니다.

    윤봉길 의사의 업적을 단순히 상해 홍구 공원에서 일본 고급 장교들을 도륙한 것으로만 보면 큰 오산입니다. 그 행동 하나로 "백만 중국군도 못한 일을 조선의 일개 청년이 해냈다"는 찬사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의 계기도 되었습니다.

    4월 29일의 의거와 모진 고문

    윤봉길 의사는 4월 29일에 의거를 치르고 자폭을 시도했으나, 일제군 수백 명에게 포위되어 체포되었습니다. 그 후 모진 고문을 겪었지만, 그의 의지는 꺾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1932년 12월 19일에 26발의 흉탄에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그 당시 의사의 나이는 겨우 25세였습니다. 이처럼 젊은 나이에 민족과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의 은혜는 우리가 갚을 수 없을 정도로 큽니다.

    유해의 귀환과 늦은 추서

    일제는 윤봉길 의사를 쓰레기 하치장에 매장했고, 광복이 되고도 한참의 시간이 지난 1946년에야 그의 유해를 한국으로 옮겨 현재의 효창공원에 안장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 배용순 여사와의 합장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분이 대한민국 건국훈장에 추서 되신 것도 겨우 1962년에 이루어졌습니다.

    기억과 고마움, 그 이상의 의미

    우리가 윤봉길 의사를 기리고 기억하는 것은 단순히 고마움 때문만이 아닙니다. 이 땅에 그와 같은 위대한 일을 할 필요가 없게 만들기 위해서도 그를 기억해야 합니다.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윤봉길 의사 기념관이 있는 예산 충의사를 방문해 보시는 것도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더불어, 윤봉길 의사의 중요한 날짜들로는 4월 29일의 상해 의거일과 6월 21일의 탄신일이 있습니다. 이러한 날짜들은 그의 생애와 업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입니다.

    이렇게 윤봉길 의사와 다른 의사, 열사, 지사 분들의 희생 덕분에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습니다. 비록 현재의 대한민국은 여러모로 아쉬운 점이 많지만, 그들 덕분에 '존재' 그 자체라는 기적이 가능한 것입니다.

    의사들의 의거와 중요한 날짜들:

    의사들의 의거와 그들이 행한 다양한 저항 행동은 때로는 혼동되기 쉽습니다. 그런데 각각의 사건은 그 자체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다음과 같은 날짜들은 특히 기억해야 할 중요한 순간들입니다.

    안중근 의사: 하얼빈에서의 의거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여 성공적으로 제거했습니다. 이는 일본의 대한민국 침략과 그 후의 식민지 통치에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봉창 의사: 도쿄에서의 의거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의사는 일본 도쿄에서 일왕 히로히토를 폭살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이 행동은 일본 내부와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고, 저항의 의미를 높였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사형일과 더불어 이봉창 의사의 서거일(1932년 10월 10일)도 기려야 할 것입니다. 이봉창 열사는 비무장으로 일본에 맞서 싸웠고, 그 과정에서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각 의사와 열사들의 의거와 그들이 남긴 업적은 서로 다르지만, 모두 나라와 민족을 위한 중요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업적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그 의미를 되새겨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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